조각 이미지 스케치


 하얗게 안개 서린 자작나무 숲에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잎사귀에 비가 스치는 소리가 나다가도 어디선가 나무를 쾅쾅 하고 나무베는 소리가 들린다.
흐리고 습한 천막 너머에서 한 나무꾼같이 보이는 사람이 나무를 하고있었다.
가죽으로 두껍게 된 옷을 입은 이 사람은 오랫동안 이곳에서 살아온 시간이 보인다.
세월에서 겪은 고통이나 후회를 보낸 수 만큼 자란 수염도 보이고
역경을 버텨가며 살아남은 사람의 눈두덩이 깊게 파인 갈색 눈도 보였으며
내일보다는 오늘을 더 중요하게 여기듯 짧게 자른 반곱슬 머리에
지나간 화려한 날의 트로피었던 부대 자수가 달린 바랜 빨간색 비니가 상징같아 보였다.
아무도 없는 이 비내리는 숲에서 그는 혼자 집중하며 나무를 베는데
그는 오늘 이 나무로 무언가를 남기고 싶은것 같다.
이 자작나무는  숲의 다른 자작나무와는 다르다.
그가 사랑했던 아버지, 이 숲과 마을 사이에 있는 오두막에 살았었던 아버지가 가꾼 나무.
기억하고 있었다. 추억이 계속 속삭이며 가르쳐 준것이다.
잘못했었던 일이 있을때마다 회개의 기도를 하면서 아버지와 함께 씨앗을 심었는데
오늘에 와서 그 잘못들을 거둬드리는 마음으로 베어내는것이다.
그는 묵묵히 나무를 베고 가지를 쳐내며 쓸만한 부분을 나눠 썰매에 싣고 안개너머 사라졌다.

 아버지의 오두막으로 돌아와 난로에 불을 우선 지폈다.
젖은 옷을 털고 불가에 걸어놓고 전기 주전자로 스프를 끓이기 위해 전원을 넣었다.
그리고 끓을때까지 불가에 앉아 잠시 쉬기로 했다.
잠시의 정적이 오랜 생각을 끄집어 내었다.
여기까지 온것에 대한 회상이 피아노 음악처럼 흐르기 시작하고 그 첫장이 머릿속에서 울려퍼진다.
어렸을적에 이 숲에서의 기억이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하나 둘 건반을 눌러볼때마다 깊게 닿는다.
그래, 아버지는 이 놀이터와 같은 숲에서 내가 나무토막을 주워오면 아버지가 그걸로 조각해주셨고
근방바다에서 빙하에 올라가 쉬고있는 물개나 바다사자들도 많이 보여주시면서 세상을 아름답게 보여주셨지.
특히 밤하늘이 선명한 날일때마다 나는 아버지의 사진기로 하늘을 많이 찍곤했어.
그 모습을 보신 아버지가 낡은 천체망원경을 사주신 날은 내 두번째 생일처럼 기뻤지.
나는 그 기억을 간직한채 학교를 다니기위해 도시로 내려오게 되었어.
봐왔었던 세상과는 너무 다른 이곳에서의 삶은 힘들기도 했지만 포기하진 않았지.
삶은 꾸준한 자의 것이라고 말하던 사람이 있었으니까.
알잖아, 어렵게만 느껴졌던 자전거 타기가 어느새부턴가 자연스럽게 되는.
외로움이 제일 큰 적이었었지만 친구를 하나둘 만나면서 아니게 되었고 또 나는...
전기주전자가 끓는 소리가 들리는 즈음에서야 정신이 들었다.
아주 잠깐이지만 분명 긴 생각을 한것같았다.
종이컵을 꺼내 따뜻한 스프를 따라 한 모금 마셨다.
시선은 따뜻한 김을 따라 바깥 창문을 향하면서 빗방울 맺힌 집안의 모습으로 향했다.
비춰진 내 모습을 보곤 시간이 얼마 없음을 느꼈다.
컵을 들고 나는 작업실로 향했다.

 여러종류의 조각칼을 꺼내놓았다.
아버지가 쓰신것이 몇개 섞여있었는데 관리를 잘하셨는지 아직도 쓸수 있었다.
어느정도 세팅이 끝난 후 일단 톱으로 베어온 나무를 적당히 자르기 시작했다.
크기가 한손으로 감싸기 좋을정도면 좋을것 같다. 그 정도 크기의 조각을 만들어야 한다.
겉을 다듬고 나서 연필을 들고 그때 그 모양을 생각하면서 선을 그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마지막에 남긴 조각의 모습.
그래, 아버지의 마지막이 다가오실줄은 상상도 못하던 때였었지.
편찮으신것도 내게 말씀하시지 않으셨어. 내 미래에 발목을 잡을까봐였을까.
소식을 들은것은 친했었던 마을 아저씨께서 아버지가 쓰려지셨다는 말을 했을때 부터였어.
무거운 마음으로 다시 상경했을때 아버지의 상태는 심각하셨지.
살기 위해서는 수술과 함께 독한 치료제를 드셔야 했어.
나는 도시에서 번 돈을 아버지의 치료비로 낼 생각이었지.
그런데 아버지는 말리셨고 수술조차 거부하셨어.
무너지는것만 같았지. 어서 치료를 받고서 일어나시기만을 바라는 마음만 있었는데 말이야.
답답한 나머지 아버지에게 호소하며 설득하기 시작했었지.
아버지는 그 말을 듣고는 다른 부탁을 내게 하셨어.
어렸을적 나무토막을 가져와준것 기억나느냐며 말씀하셨지.
그때처럼 내게 너가 좋다고 생각되는 나무와 내가쓰던 조각칼을 가져와주렴.
마지막을 준비하셨던거야. 그랬다고 나는 생각했어.
나는 주변에 있는 온갖 목공소를 다 돌아다니기 시작했고 좋은 나무를 도서관에서 찾기도 했지.
지갑에 돈을 모두 써도 좋다는 마음이었어. 아버지의 마지막 소원을 이뤄드리기 위해서라면 말이야.
내가 찾을수 있는 가장 좋은 목재와 아버지가 쓰시던 조각칼을 오두막에서 가져왔지.
그리곤 아버지는 여윈 팔로 조금씩 조금씩 나무를 조각하기 시작하셨어.
그 모습을 볼때마다 나는 너무나도 견디기가 힘들었지.
이별의 때가 다가온다는게 얼마나 잔인한 일인지 처절하게 느낀 순간이었어.
언젠가 너도 느낄수 있겠지만은 만약 너또한 그런 상황이 온다면말이야
보는것 마저도 너무 힘들어 미칠것같아도 옆에 꼭 있어주길 바래.
돌아가실때 나는 옆에 있어주지 못했다는 죄책감때문에 미칠뻔 했으니까.
아버지의 병상을 정리할때 떠나가셨다는 슬픔에 미처 보지못했던 조각을 발견하게 됐어.
내 어린시절의 모습의 조각상, 그 조각 밑에는 아버지의 마지막 유언이 적혀져 있었지.
어두운 하늘에서 별처럼 빛났던 아이야 빛을 잃지 말아라.
내생에 가장 울림있었던 작품이었다.
그리고는 난 조각의 데셍을 다 마쳤다. 그 선을 따라 나는 조각칼로 파내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느꼈었던 그 느낌이 무엇인지 느껴진다.
분명 그러셨을거라 생각이 들면서 마음속에 울컥하는 마음을 애써 침착하게 했다.
어느정도 형태가 갖춰질때 갑자기 내 손에 힘이 들어가지가 않았다.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려져가는 모습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시야가 흐려졌다.
떨어트린 조각에 손을 뻗었지만 끝내 잡지못한 느낌이었다.

 눈을 떴을때에는 빛속에 있는 내 가족들이 눈에 먼저 보였다.
아내, 어느샌가 커버린 내 아이들 모두가 보인다.
주변을 둘러보니 내가 있었던 병실이었다. 내가 갑자기 자리를 비워 가족들이 많이 놀랐을것이다.
나의 몸은 좋은 상황이 아니다. 그럼에도 해야할일이 있어서 오두막에 갈수밖에 없었다.
가족들은 그때의 내모습같았다. 희망이 없는 그 모습.
밤하늘에 아무것도 비추지 않는 슬픈 모습.
이런 모습을 아버지는 봐왔던 것인가.
걱정과 격려의 말 속에서 나는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오두막 작업실에 두고온 내 조각과 조각칼을 가져와 달라고,
마지막으로 남기는 나의 진심어린 부탁이었다.
가족들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남을 이해하려 노력할줄 아는 착한 사람들이기에.
다음 날 조각과 함께 조각칼을 가져오자마자 나는 조각을 시작했다.
조금 쉬시라는 아이들의 말과 견디기 힘들어하는 아내의 모습에 괜찮다 말해주며.
그래, 내 가족들과 함께 좀더 많은 일을 겪어보고 싶었는데 말이야.
아내를 처음 만나기 전까지는 로맨스를 믿지 않았어.
그녀가 다가와 준건 정말 행운이었다고 생각이 들었고.
숲에 있는 나와 그녀의 추억의 장소에서 프로포즈 했을때는 정말 영원한 행복의 약속같았지.
눈앞에 사랑하는 사람이 늘 있는다는게 얼마나 대단한 축복인지 그제서야 알았어.
내가 아빠가 되었을때에는 솔직히 자신이 없었지.
하지만 아이의 모습을 보고나서는 오히려 힘이 나기시작했어.
아빠로서 할수있는 최선을 했었던것 같아. 완벽하진 않지만 노력하는 모습.
그 다음에 어느새 둘째가 태어났지. 너무나도 시간이 빠르게 느껴졌어.
아이 두명에게서 기진맥진한 우리 둘의 모습을 서로 자세히 바라볼때가 언제였는지.
맞아, 그런 순간이 가끔가끔 있었을때 넌 눈물을 참지 못하고 난 안아주곤 했지.
아이들은 벌써 커가는데 말이야. 나는 아직도 우리 아이들을 보면 아기때 모습이 생각나.
그럴때마다 애취급한다면서 아이들은 내 마음을 아프게 할때도 있었지만.
우리 눈에만 이렇게 보이는거라 믿을수 밖에 없었어.
우리들에게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많았지만 분명 기억에 많이 남는건 좋은 일 일거라 생각해.
내가 나쁜 일을 어쩔수 없이 만들게 되버린것에 대해서 정말 미안해.
늘 곁에 있어주겠다는 너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게 너무 죄책감이 들어.
그때 아버지 생각이 나게 된거야. 나에게 빛을 잃지 않게 힘을 주셨던 아버지의 마지막이.
그래서 나는 무리해서라도 얻어올수 있는 가장 의미 있는 나무를 가져오려 아버지의 오두막에 갔던거야.
순간 거기서 쓰러졌을때 완성하지 못하고 떠나게 될까봐 많이 두려웠어.
다행히도 내게 기회가 남아있어서 정말 신께 감사드릴 뿐이야.
나는 힘이 닿는대로 조각을 파는데 여념이 없었다.
가족들은 무슨 조각상이냐고 물어볼때마다 내가 받은 가장 값진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분명히 이게 남은 우리 가족들이 빛을 잃지 않게 도와줄것이다.
그렇게 나는 하나의 조각을 남기고...

 슬프고 애통한 울음소리가 병실을 메웠다.
가족을 잃은 슬픔은 깊고 깊은 기억의 상처가 되어 남게 되었고
슬픔에서 정신차린 남은 가족들은 그를 떠나보낼 준비를 하게 되었다.
그를 찾은 사람들은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로 그를 떠나보냈고 하나 둘씩 위로의 말을 나눴다.
그의 가족들은 검은옷을 입었고 창백해 보였다. 풀이 부딪치는 소리는 슬프게 들렸고
차가운 바람은 떠난이의 빈자리를 매꿔 공허히 느껴지도록 만들었다.
유품을 정리하는 날, 그가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조각의 모습을 그녀는 보고 조용히 챙겨 나왔다.
아이를 안고있는 그녀의 모습의 조각상을 그는 남겼지만
왼쪽에 아이 한명이 더 있을 공간이 남아 완성하지 못한채 그는 떠나버렸다.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었던 그의 소원을 이룰 시간을 하늘이 허락하지 않은듯 싶었다.
집에 돌아온 그녀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집에 남은 유품도 정리하고 있었다.
그의 흔적이 남아있는 물건들을 하나하나 정리할때마다 슬픔도 같이 정리되어 가는듯 보였다.
홀로 남은 엄마라는 책임감이 든 그녀는 더이상 울지 않기로 결심한것 같았다.
남편의 방을 정리하던 그녀는 또 하나의 조각을 발견하게 되었다.
갑자기 스친 생각에 그녀는 병원에서 챙겨나온 짐에서 무언가를 찾았고
그가 남긴 조각을 가지고 남편의 방에 돌아와 방에 있었던 조각 옆에 두었다.
그러자 마치 하나의 조각처럼, 편안하게. 
그녀와 아이들의 모습이 되었다.
그녀는 정적속에서 한참동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슬픈 감상의 시선이 밑부분에 쓰여진 글에 가게 되었고.
두개의 글은 하나가 되어서 

 어두운 하늘에서  함께 미래를 약속하고
별처럼 빛났던 아이 들을 내게 준 내 아내.
빛을 잃지 말아라. - 사랑하는 남편.

 그녀는 그가 없는 그의 방에서 하염없이 울었다.
그가 남기고 간 것은 분명 잘 전해졌을것이다.
바깥의 차가운 바람은 더이상 공허하지 않았고
빈자리 또한 그의 조각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이제 그녀는 그가 그리워 질때면 가끔 조각의 문구를 읽곤한다.
그럴때 마다 가슴이 울리면서 그가 우리와 함께 있는듯한 기분이 든다.
아이들이 이 마음을 이해할 때가 온다면
분명 그녀는 아이들에게 물려줄것이다.

1 2 3 4 5 6 7 8 9 10 다음